- 폭풍전야

 일요일 밤, 출근 전 퇴사를 결심하자 오히려 모든 것이 가벼워지는듯 했다. 마치 초원에 혼자 나와있지만 어깨에 지고 있던 모든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이제 다시 먹고 살 방법을 강구해야한다는 생각으로 결연한 감정이 듬과 동시에 설레기까지 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내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비참한 순간이 되지 않을까. 그만둔다는 건 어찌됐든 그들의 눈에는 패배로 비춰질 것이고 나는 생존하지 못한 나약한 사람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다시 생각해보면, 나약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나와 안맞는 것 뿐일지도 모르는데. 내 생각이야 어찌되었든 간에, 남들에게 내 모습이 그렇게 비춰진다는 사실 자체가 몸서리치도록 싫었다. 게다가 정말 내가 들어가고 싶었던 그 회사에서 내 발로 나오는 그 순간은, 정말이지 슬프고 비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가야한다. 이건 내 인생이고, 남들이야 뭐래도 내가 알 바는 아니다. 그저 내가 좋으면 그 선택은 옳은 것이다.

- 퇴사 실패

 마음을 비운채로 출근을 했다. 우선 사수선배에게 조심스럽게 메신저로 연락을 했다. 잠시 할 말이 있다고. 회의실로 와줄 수 있냐고. 그리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흡사 이별을 말하는 느낌과 굉장히 비슷했다. 평소 나를 잘 챙겨주려고 했던 사수는 굉장히 아쉬워하며 정말 확실한 것이냐고 되물었다. 나는 이미 결연한 의지를 다진 상태였기 때문에 확고한 생각이라고 답했다. 그 뒤로, 회사내 결재선을 따라서 나의 소식이 올라갔다. 면담 그리고 면담이 이어졌다. 최종보스는 팀장님이었는데, 나의 퇴사를 두고 장장 2시간에 걸친 네고가 시작되었다.

 결론적으로, 나의 퇴사는 우선 보류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회가 된다면 적고자 한다. 아직은 나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조금도 감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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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박감에 숨이 차오르다.

 어느덧 입사한지 9개월 가량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입사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술을 과하게 마셔 계속 토를 한 적도 있지만, 그 때만 해도 열심히 일해서 인정받고 회사생활을 잘 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해외 출장에 가서 내 능력에 벅찬 임무를 맡고 끊임없이 구박을 받으면서 조금씩 무엇인가 어긋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 이후로도 업무 분장이 나의 능력을 벗어난다고 느꼈고, 나는 물이 턱끝까지 올라온 밀폐된 공간 속에 갇힌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한번은 어떤 일은 못하겠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또한 군대같은 문화 속에서, 신입사원에게도 책임을 지우려는 일부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조직에 더 이상 정감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진짜 압박은 내가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수 십번의 원서 지원 후 탈락을 경험하고, 천운이 도와 합격한 곳이 바로 이 회사다. 다른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합격할 당시 부모님이 기뻐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내눈에 선한데, 조금 힘들다고해서 내 발로 이곳을 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말이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였다. 

 일요일부터 월요일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동안 내가 느낀 것은 월요병 축에도 끼지 못했다. 근데 일요일에만 느꼈던 이 두려움이, 토요일부터 느껴지더니, 어느 순간 금요일 퇴근하는 순간부터 느껴지기 시작했다. 주말의 기쁨도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이러다가는 안되겠다 싶었지만, 그렇다고 여전히 내 발로 이곳을 나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 유투브에서 얻은 지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집에 오면 씻지도 않고 누워 핸드폰을 봤다. 중학생때부터, 대학교 다닐 때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결국 내가 이런 직장인이 되려고 이렇게 열심히 살았나 하는 후회부터, 당장 내일 닥칠 위기와 긴박한 순간들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휘감았다. 아무 생각 없이, 잘 때 가장 행복했고 깨어있는 순간 대부분은 핸드폰을 하면서 보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법륜 스님의 유투브를 보게 되었다. 사람 저마다의 힘듦을 누군가의 잣대로 순위를 매길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나보다 훨씬 복잡하고 골치아픈 고민들을 법륜 스님에게 털어놓았고, 법륜 스님은 즉문즉답으로 그에 대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 중에는 '대기업 신입사원인데 너무 힘들어요'라는 제목의 유투브도 있었다. 순간적으로 바로 터치해서 영상을 보았다. 힘들게 입사는 했는데, 일이 너무 힘들어서 매일 아침 울면서 출근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거 완전 내 얘기네'하면서 누워서 유투브를 보고 있는데, 법륜 스님의 말이 과연 압권이었다.

 '일단 그만 둬라.' 이어져 나오는 내용은 더욱 더 놀라웠다. '근데 그만두면,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해야하니 파출부일이라도 해야할 것 아닌가. 그러면 당장 때려 치고, 파출부 일을 해라. 근데 내가 대학도 나오고 했는데, 파출부 일은 죽어도 못할 것 같다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냥 다니던 회사 계속 다니면 된다다.'

 결국 고민을 의뢰한 사람이 괴로운 이유는 '욕심' 때문이라는 것이다. 너무 힘든데, 대기업 다니면서 얻는 복지와 돈, 나름의 명예 등은 잃기 싫다. 그렇다고 또 파출부 일은 하기 싫고, 여기서 괴로움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인생이란 것은 본래 선택과 책임의 연속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나는 수없는 선택을 하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 인생이란 것이 이토록 단순하다. 그러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을 때, 딜레마 속에서 인생은 괴로워지기 시작한다.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무릎을 치며 나를 옥죄던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당장 때려쳐야겠다, 나는 차라리 설거지 알바를 하겠다.' 이렇게 갑갑한 하루하루를 보내느니, 차라리 육체적으로 힘든 길이 낫겠다 싶었다. 아직 젊으니까, 이제는 입사가 아닌 다른 길도 모색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지고, 새로운 희망과 기분 좋은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퇴사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은 것만으로도, 흑백과도 같았던 내 삶이 조금은 생기를 되찾은 것 가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맨주먹으로 다시 내 삶을 살아간다는 생각에 설레기까지 했다.

 어느 일요일 밤, 나는 그렇게 퇴사를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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