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다시 또 하루의 시작

 밤 새 폭풍이 몰아치는 듯 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바람은 점점 더 세졌다. 모래바람은 쉴새없이 텐트를 때렸고, 덕분에 텐트 속의 나는 다시 모래인간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오늘은 가장 여행 중 가장 기대했던 포레스트 검프 포인트에 가는 날이다. 사실 여행기 초반에도 밝혔지만,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특히 많은 감명을 받은 장면은 바로 달리기로 미국을 횡단하던 포레스트 검프가 달리기를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다. 왜 이 장면이 나는 유독 마음에 들었는지는 자세히는 모르겠다. 어쩌면 모든 것에 회의감을 갖게되는 '현타'가 오는 장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심지어 속세를 피해 자연 속으로 달리던 사람에게도 현타가 오기는 마련이다. 속세의 삶에서 '현타'가 와서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그 달리기에도 또 현타가오는 '더블 현타'가 온 것이다. 글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뭔가 인생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속의 포인트가 바로 포레스트 검프 포인트


 큰 흥행 성적을 올린 이 영화의 이 장면은 많은 사람들에게도 많은 감명을 줬다. 그래서 저 장소에 가서 사진들을 많이 찍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 붙여진게 포레스트 검프 포인트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여기가 정확히 어딘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다행히 모뉴먼트 밸리에서 동쪽으로 가는 길은 단 한 개뿐이 없어서 그 길을 따라가다 여기다 싶으면 그곳에서 사진을 박으면 된다. 


 어제 반쯤 남겨둔 나바호족 전통 햄버거를 먹고 모래 속에 파묻힌 자전거를 꺼내 오늘의 주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날씨가 정말 심상치가 않다. 바람이 세도 너무 세다. 다행히도 역풍은 아니었다. 강력한 서풍이 불었다. 오늘의 루트는 다음과 같다.


-전반적으로 동북쪽으로 가는 길, 강력한 서풍은 나쁘지 않다.


2.포레스트 검프 포인트의 배신

 바람이 너무 세서 동쪽을 향해 갈 때는 엄청난 순풍이 불었고 북쪽으로 방향을 틀면 강력한 옆풍이 불었다. 모뉴먼트 밸리의 규모가 제법 커서 그곳을 빠져나오는데도 오래 걸렸다. 모뉴먼트 밸리를 빠져나오면서 계속해서 포레스트 검프 포인트가 어딜까 생각했다. 차로가면 모뉴먼트 밸리에서 10분도 안걸린다는 얘기를 블로그에서 들은 것 같다. 자전거로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면 나오지 않을까하고 생각하던 중에 멀리서 한 남자가 열심히 풍경사진을 찍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저기구나!' 싶었다. 다가가서 그 남자한테 물어보니 자기도 여기가 포레스트 검프 포인트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고 한다. 생김새는 얼추 비슷했다. 사실 여기서 사진을 찍으려고 그동안 무거운 삼각대를 들고 다녔는데, 바람이 너무 심해서 삼각대에 카메라를 얹었다간 카메라가 박살날 것 같았다. 


 다행히 그 남자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나도 찍어줬다. 그렇게 찍은 사진...

-도대체 여기가 맞는지 알 도리가 없다.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서 눈 뜨기가 어려웠다.



-풍경도 한 컷


 머리도 눌리고, 모자도 예전에 바람에 날려버려서 모자도 없다. 사진이 내가 생각한 것 처럼 안나왔다. 엄청나게 기대했던 곳인데... 여기서 인생 사진을 찍으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는데 내가 생각한 그림이 나오질 않는다. 모래를 동반한 바람이 점점 심해지고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럴땐 일단 전진이다.


 바람이 어찌나 세던지 거짓말을 조금도 보태지 않고 평지에서도 페달을 밟지않아도 자전거가 앞으로 나갔다. 게다가 내리막 길도 제법 많아서 오히려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가야했다. 다리를 움직이지 않고 손가락만 움직이면서 이동하니 마치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오토바이 놀이를 하면서 가는데 또 멀리서 커플이 보인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데 뭔가 느낌이 동양인이다. 이제는 동양인만 봐도 반갑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말이다! 이 허허벌판에서 한국인을 만나다니? 그 커플은 엄청나게 많이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모래 폭풍때문에 역시 사진찍기가 정말 힘들어 보였다. 눈을 뜰 수가 없는 정도의 강한 모래 바람이었다. 한국인을 만난게 너무 반가워서 말을 걸었다. 대화를 해보니 이곳이 바로 정확히 포레스트 검프 포인트라고 한다. 아까 그 청년은 엉뚱한 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던 것이다. 아... 이곳이 포레스트 검프 포인트구나...여기서 삼각대를 쓰다가는 삼각대와 카메라 모두 바람에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국인 커플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그렇게 찍은 사진...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왜 하필이면 365일 중 이 날, 나는 이곳에 왔을까. 공간은 맞추어 왔는데 시간을 잘못맞췄다. 때아닌 모래폭풍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많이 기대한 나로서는 엄청나게 절망할만한 일이지만, 이상하게도 생각보다 슬프지는 않았다. 이 상황이 뭔가 재밌기도 했다. 어차피 이런게 인생아닐까 싶기도하고. 포레스트 검프가 '현타'를 가졌던 그 장소에서 나도 갑자기 '현타'가 온 것일까?


 무념무상, 바람을 타고 할치타라는 곳에 도착했다. 블러프까지 가는 길의 중간에 있는 도시이지만, 머물만 하다고 판단되면 그곳에서 머무려고 했다. 그런데 이 도시 느낌이 참 좋지 못하다. 하나밖에 없는 카페는 문을 닫았고 주인이 없는 빌딩들이 너무 많아 보인다. 얼른 이곳을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할치타를 빠져나오는데 저 멀리서 이상하게 생긴 돌이 보였다.



-멕시칸 햇

 지도에서 Mexican Hat이라는 이름을 본 적이 있는데 직감적으로다가 저것이 바로 멕시칸 햇이라는 것을 알았다. 


-오버워치 속 맵에도 나오는 것이다ㅎㅎ 광고판 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계속해서 길을 가는데,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새 한마리가 나와 반대방향으로 날아가는데 바람 때문에 제 자리에서 날개짓을 하고 있었다! 내가 만약 동에서 서로 여행했다면, 저 새와 같은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포레스트 검프 포인트에서 제대로 사진 못찍은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고 모든 것이 감사했다.

-정말 강한 바람인데, 동영상으로는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


-좌측에 뭔가 흩뿌연 것은 모래바람 때문이다.


-이런 오르막도 올랐다.


 엄청난 오르막을 만나서 낑낑거리면서 올라가는데 팔이 내 허벅지만한 아저씨들이 두건을 쓴채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너무나도 손쉽게 오르막을 올라갔다. 상대적 박탈감...하지만 묘하게 승부욕을 느껴서 쉬지 않고 꾸역 꾸역 올라갔다. 내가 더 대단하다는 정신승리를 시전했다.

 결국 블러프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 마을, 숙박이 너무 비싸다. 오늘은 재정비를 위해 무조건 모텔에서 자야하는데. 호텔 주인아저씨의 얘기를 들어보니 지금이 성수기란다. 그나마 저렴하고 주변에 마트가 있는 모텔을 찾았다. 눈물 젖은 달러를 내밀며 다짐한다. '여기서 반드시 뽕 뽑는다.'


-일광건조중인 텐트


 모텔에 들어가자마자 대대적인 개인 정비에 들어갔다. 호스를 이용해서 자전거를 물로 씻고, 모든 장비를 하나하나 물로 다 씼었다. 모래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모레를 거의 지고 다닌 셈이다. 오늘 하루 동안 뭔가 많은 사람을 만나지 않고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닌 일에 혼자서 고민하고 뚝딱뚝딱 거리는 모습을 보니 무인도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바로 나가서 마트에서 피자를 사먹었다. 캔맥주도 잊지 않았다. 피자를 먹고도 배가 고파 가지고 있던 사발면도 흡입했다. 


 그리고 블로그 정리를 하고, 내일 루트를 정리했다. 내일은 드디어 콜로라도로 넘어가는 날이다. 이제 서부를 넘어 중부의 입구로 들어가는 셈이다. 느낌이 오묘했다. 그래도 어떻게 여기까지는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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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재 2017.06.06 08:39 신고


    와 어디 기록해둔걸 바탕으로 써내는거야? 아직까지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다니

    나도 요새 겨우 현타 피했더니 더블 현타 오는 느낌이라 엄청 공감하고 간당
    글 참 잘쓰네👍

    • 루트221 2017.06.08 13:35 신고

      ㅎㅎ고마워 다 적어놓고 아직까진 사진 보면 생각나더라구ㅋㅋㅋ

1.바람이 심상치가 않다.


 모뉴먼트 밸리 캠핑장에서 하룻밤을 자는데, 밤새도록 바람 소리가 텐트를 후볐다. 텐트장 바닥은 전부 모래였기 때문에 자면서도 모래 알갱이가 얼굴에 내려앉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이 맛에 자전거 횡단하는게 아닐까하는 이상한 합리화와 온몸을 감싸는 피곤함 때문에 꿀잠을 잘 수 있었다. 모뉴먼트 밸리 캠핑장은 웅장한 모뉴먼트 밸리를 바로 앞에 두고 텐트를 칠 수 있기 때문에 천혜의 캠핑장으로 그 명성이 자자하다. 그래서 일부 낭만있는 여행가들은 캠핑장의 위치와 풍광에 매료되어 즉흥으로 2박을 결정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같은 줏대없는 여행가도 지친 몸도 쉬게 할겸 낭만있는 척도 해볼겸 해서 그들을 따라 이곳에서 1박을 더 하기로 결정했다. 막상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하루를 지낼 생각을 하니 세끼를 먹는 일부터 골치가 아파졌다.

-아침은 얼큰하게 너구리로 해결하기로 했다.


 다행히도 이곳에 오기전에 대형 마트에서 너구리를 구할 수 있었다. 라면은 신이 준 선물이다. 모뉴먼트 밸리를 앞에 두고 너구리를 끓이는 이 맛에 자전거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닐까?



2.잠깐 동안의 외출이 불러온 대참사

 이제 밥도 해결했겠다, 다음 일정을 정해야했다. 텐트를 정리할까도 했지만 어차피 오늘도 텐트를 쓸껀데 뭐하러 정리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선택은 자전거 여행 전반부를 통틀어서 최악의 선택이었다! 펼쳐놓은 텐트를 그대로 놔두고 근처 유일한 건물인 모뉴먼트 밸리 호텔로 들어갔다. 로비에서 빵빵한 와이파이를 쓰면서 사진 정리도 하고, 카톡도 할 생각이었다. 호텔로 걸어가는 짧은 거리에도 강한 바람에 몸이 휘청거렸다. 자연은 계속해서 경고를 보내고 있었지만 앞일을 하나도 모르는 나는 재빠르게 호텔로 기어들어갔다.


-모뉴먼트 밸리 호텔에서 뭔가 그럴듯하다고 생각해서 아무생각 없이 찍은 사진


 한참 사진 정리를 하며 여유를 즐기고, 낮잠을 잘까해서 텐트로 다시 들어갔다. 아비규환이 펼쳐져 있었다. 모래 알갱이가 텐트로 침입한 정도가 아니라 텐트와 모래더미가 물아일체가 되어있었다. 심지어 말린답시고 열어놓은 코펠에는 모래가 수북히 담겨 있었다. 모든 장비가 모래에 반쯤 파묻혀있었다. 휴식의 대가로 산더미 같은 재앙이 닥친 것이다. 어떻게 처리해야할까... 생각해봤지만 도저히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물로 씻는 수밖에 없었고, 지금 씻어봐야 또 모래의 습격을 당할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사진 한장 찍지 못했다. 기자로 치면 빵점 기자인 셈이다. 그 충격적인 광경을 말로만 쓰고 사진으로 표현 못한다니 애석하다. 



3. 샌드맨이 되다.

 때로 이런 저런 일로 골치가 아파지면 잠을 청한다. 설령 그것이 모래 한복판일지라도. 꼼꼼이도 침투한 모래 알갱이들을 보면서 이것들을 처리할 생각에 머리가 아득해져왔다. 나는 어차피 낮잠을 자고자 했기에 모든 장비들을 텐트 안 구석으로 밀어버리고 텐트 안에 누웠다. 그냥 될대로 되라지... 모든 것을 포기하니 마음이 편했다. 텐트 바닥과 모래 알갱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바람을 점점 강해졌고 얼굴 위에도 모래가 묻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샌드맨이 되었다

 일어나자 온몸에 모래가 낀 것이 느껴졌다. 모든 것은 내일 해결한다는 생각으로 애써 모래들을 무시하고 밥을 먹으러 유일하게 식당이 있는 모뉴먼트 밸리 호텔로 갔다.



4.모래, 맛없는 밥, 빨리 내일이 왔으면.


 모뉴먼트 밸리는 나바호 족이 신성시하는 곳이다. 모뉴먼트 밸리 호텔은 관광지 답게 나바호족의 전통 음식을 팔고 있었다. 놀랍게도 튀긴 빵을 이용해 햄버거 처럼 만든거였는데 과연 기름범벅인 이 음식이 전통음식일지는 의심스럽다. 내일 아침도 해결할 겸 제일 큰 버거를 시켰다. 음식이 나오고 과연 이게 1인분이 맞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기는 정말 엄청났고, 느끼함도 엄청나서 그 누구도 한번에 먹을 수 없는 것이 분명했다. 배고픈데도 맛이 없는 음식에 슬퍼진 나는 새드맨이 되었다.


-전통 음식이 맞나요?


  다시 문제의 텐트로 돌아와서 과연 내가 텐트를 잘못친 까닭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주변의 다른 텐트들을 살펴봤다. 기본적으로 내 텐트와 다를 것은 없어 보였다. 차이가 있다면 확실히 크기가 크고 밑 부분이 좀더 정밀하게 막혀있었다. 기본적으로 내 텐트는 텐트 속과 커버로 이루어져있어서 그 사이를 통해 모래가 들어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꾸 다른 텐트를 기웃거리는 내 모습이 좀도둑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텐트로 다시 들어왔다. 

 아까 일정을 확인해본 바로는 가장 가까운 도시는 할치타라는 곳이다. 오늘 쓸데없이 휴식을 하면서 모래를 뒤덮어썼기 때문에 내일도 짧게 주행을 하고 반드시 모텔에서 장비 청소를 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일은 이 여행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포레스트 검프 포인트에서 사진을 찍는 날이다. 바로 영화 속에서 포레스트 검프가 달리기를 멈추는 그 포인트다. 희망이 생기자 당장의 절망은 없어지기 시작했다. 침낭 속으로 몸을 숨겼건만 빼꼼 나온 얼굴에는 여전히 모래알이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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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재 2017.06.06 08:48 신고

    샌드맨ㅋㅋㅋㅋㅋ 새드맨
    굉장히 털털한 사람이었구나 너 ㅋㅋㅋ
    덕분에 재밌게 읽고 갑니당~ :)

part 1에서 계속


 누군가가 나를 불러서 하는 말을 잘 들어보니 '태워다줄까?'하는 소리다. 자전거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호의를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다! 흔쾌히 오케이. 트럭에 자전거를 놓고 나는 뒷 자석으로 들어갔다.


 사실 누군가가 갑자기 태워준다고 했을때, 덜컥 타는 것은 조금은 위험한 일이다. 어쩌면 굉장히 위험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딱봐도 나이가 느껴지는 노부부였고 뭔가 직감적으로 굉장히 안전하고 좋은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사실 이게 더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 분들은 미국에서 많이 봤던 사람들과 다르게 백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니었다. 이들은 미국 원주민이었던 것이다!


 사실 어렸을 때, 한 군인이 미국 원주민과 교감(?)을 나누는 내용의 '늑대와 함께 춤을'이라는 영화를 보고 여운에 빠졌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나도 한번쯤은 그들과 꼭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우연히 조우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할머니의 이름은 하스룬이고 할아버지의 이름은 월레스였다.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


 어디로 가냐고해서 나는 모뉴먼트밸리에 가기 직전 마을인 카이옌타까지 간다고 했다. 오늘 카이옌타에 도착한다면 내일은 반드시 고대하던 모뉴먼트 밸리를 두 눈으로 볼 수 있다. 자전거로 갔다면 두세시간정도 걸렸을 거리이지만, 차로 가니 30분정도 밖에 걸리질 않았다. 카이옌타에 도착하자 이 분들이 같이 밥을 먹자는 뜻밖의 제안을 하셨다. 만약 내가 자동차로 여행을 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자전거 여행자는 본래 연약한(?) 존재라 현지인의 작은 호의가 굉장한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이 점을 잘 아는 현지인들도 자전거 여행자들을 보면 선뜻 먼저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뜻밖의 인연을 만나고 오롯이 '나의 여행'이 완성되어가는 것 같다.


 타코를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스룬 할머니의 경우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신다고 했다. 두분 모두 연로하셨지만 목소리의 기운과 눈빛에서 오는 특유의 강함이 느껴졌다. 이들은 미국 원주민 중에서도 나바호 족의 후손들이었다. 모뉴먼트 밸리는 예로부터 나바호 족이 굉장히 신성시한 장소라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점점 더 모뉴먼트 밸리에 대한 신비감이 강해진다.


 밥을 다 먹고나자 심지어 이분들은 나의 숙박까지도 걱정해주셨다. 이 근처에 있는 모텔에서 자면된다고 했으나 이곳은 너무 비싸다고 한다. 그래서 알아봤더니 1박에 90불. 확실히 비싸긴 하다. 그래도 하루쯤이야 여기서 묵어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그냥 여기서 자겠다고 했으나 계속 여기는 너무 비싸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만 더 가면 월레스 할아버지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거기서 재워줄 수 있다고 해서 차를 타고 모뉴먼트 밸리까지 갔다. 근데 분명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했는데 꽤나 멀리 간다. 그리고 그 집주인과 통화를 했는데 집주인이 전활 받질 않는다.


 조금만 더 가면 캠핑장이 있다며 차라리 거기서 자는 것이 어떻냐고 물어보신다. 그러나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모뉴먼트 밸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모뉴먼트 밸리에 도착할 때는 뭔가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서서히 그 아우라를 느끼면서, 그 감동이 배가 되는 것이 포인트였는데, 지금 자동차로 모뉴먼트 코 앞에 와있다. 하지만 끈질긴 이들의 호의를 거절할 수는 없다. 그렇게 캠핑장을 찾으면서 조금씩 더오다가 모뉴먼트 밸리에 도착해버렸다...! 


 아 이렇게 봐버리면 안되는데...하면서도 막상 그곳에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굉장히 설렜다. 몇년 전 부터 기획했던 이 여행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곳, 어떻게 보면 이 여행을 기획했을 때, 가장 상징적인 장소라고 여겼던 곳을 드디어 도착한다. 사진 속으로만 보았던 곳을 직접 두 눈으로 봤을 때 그 느낌은 어떨까?


<뜻밖의 도착>

 모뉴먼트 밸리의 모습이 나를 압도했다. 사실 모습 그 자체보다도 LA부터 여기까지 왔다는게 우선 너무 감격적이었다. 내가 생각한 것의 일부를 실현하다니...나 조차도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일까 의심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 이 곳에 왔다는 것 역시도 새로운 감동이었다. 비록 자전거를 타고 그 감동을 곱씹어보면서 오진 못했지만 또 이렇게 에피소드가 생긴 것이 생각해보니 나름 독특하다고 여겨졌다. 어차피 모뉴먼트밸리와는 이렇게 만날 운명이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스룬 할머니와 한 컷>


<해가 저물어가는 모뉴먼트 밸리 1>


<해가 저물어가는 모뉴먼트 밸리 2>


<그 와중에 재빠르게 텐트를 쳤다. 모뉴먼트 밸리가 보이는 바로 앞에서 캠핑이라니 너무나도 낭만적이다.>


<해가 지고 달이 밝았다>


 바람 소리를 들으며 텐트에 누워있는데 기분이 좋았다. 처음에 여행을 시작했을 때만해도 걱정하던 것이 있었다. 바로 '나의 여행'이 되지 못하면 어떡하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아무런 스토리 없이 그야말로 자전거만 타다가 끝나는. 결국 극기체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여행으로 끝나버리면 어쩔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벌써 부터 제법 나만의 여행이 갖추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차피 내가 걱정해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냥 우선 몸을 던지면 된다! 당일 여정의 약 3분의 2를 자동차로 해결한 얌체 자전거 여행자는 내일도 여기서 1박을 더 하며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을 청했다. 그것이 대재앙으로 이어질 줄은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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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동욱 2017.03.12 12:58 신고

    너무 흥미진진 ㅋㅋㅋㅋ 책내도 되겠어!

    • 루트221 2017.05.15 21:55 신고

      ㅋㅋ고마워 연재하는게 너무 어렵다...계속 써야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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